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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구석 극장
1963년 프랑스, 남학교였던 볼테르 고등학교에 여학생들이 처음 발을 들이던 날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남학교가 남녀공학으로 전환되던 그 첫날의 공기는 어떤 말로도 완전히 재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드라마는 그 낯선 긴장감을 60년 전 프랑스로 옮겨 놓은 작품입니다.볼테르 고등학교, 첫 등교일의 균열, 남녀공학 전환이 만들어낸 충돌저는 고등학교 시절, 학군 조정으로 남학교가 갑자기 남녀공학으로 바뀌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때 느낀 건 단순한 설렘이 아니었습니다. 교실 안에 이성이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교정 전체의 문법이 하루아침에 달라졌습니다. 복도에서 떠들고 뛰던 애들이 갑자기 조심스러워지고, 아무렇게나 입고 다니던 친구들이 등굣길에 거울을 보기 시작했죠.드라마 속 1963년 볼테르 ..
이 영화를 보면서 어린 시절 제가 드나들었던 한 친척 가문의 저택이 떠올랐습니다. 값비싼 대리석과 황금빛 조명으로 치장된 그 집은 멀리서 보면 성벽처럼 찬란했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재산을 둘러싼 날카로운 신경전이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장예모 감독의 황후화는 그 기억을 스크린 위에 옮겨놓은 것 같아 묘하게 불편하고, 그래서 끝까지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황금빛 독약과 황실 권력의 민낯 — 색채미학이 숨긴 것일반적으로 장예모 감독의 영화는 색채 하나만으로도 논문 한 편이 나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황후화 역시 그 평판에 걸맞게, 황금과 노란 국화라는 단 두 가지 시각 원소를 극단까지 밀어붙인 압도적인 색채미학(Color Aesthetics)을 선보입니다. 여기서 색채미학이란 단순히 화면이..
탈출에 성공했는데, 그게 진짜 탈출이 맞을까요? 프랑스 SF 스릴러 이스케이프 큐브(원제: O2)는 좁은 캡슐 하나로 생존과 정체성, 인류의 미래까지 우겨 넣으려 한 작품입니다. 저도 몇 년 전 모든 것이 무너지는 극한의 시간을 보냈던 터라, 출구 없는 공간에서 몸부림치는 주인공의 모습이 남다르게 다가왔습니다.이스케이프 큐브, 딸을 잃은 여자, 괴상한 큐브 안에 던져지다영화는 딸을 잃은 슬픔을 감당하지 못하고 도로 위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앞에 둔 리사의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차마 발을 내딛지 못하고 망설이던 그녀는 낯선 남자 아담의 차에 올라타고, 라디오에서 충격적인 속보가 흘러나오는 순간 의식을 잃습니다. 눈을 뜨니 사방이 차가운 기계 장치로 뒤덮인 정체불명의 큐브 공간. 손목에는 카운트다운이 새겨진 ..
악인이 선인으로 바뀌는 이야기, 그게 정말 '구원'일까요? 영화 크리미널을 보고 나서 저는 한동안 이 질문을 놓지 못했습니다. 대형 사고 후 극심한 기억의 혼란을 겪었던 제 경험이 고스란히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기억이 뇌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그 공포, 저는 이 영화가 그냥 SF 액션으로만 읽히지 않았습니다.크리미널, 죽은 요원의 기억, 흉악범의 뇌에 이식되다영화는 런던 한복판에서 시작됩니다. CIA 정예 요원 빌 포스터가 비밀 임무 수행 중 반정부 테러 조직의 추격을 받다가 끝내 목숨을 잃습니다. 문제는 그가 전 세계 미군 무기 통제 시스템을 해킹한 천재 해커 '더치맨'의 소재와 암호를 아는 유일한 인물이었다는 점입니다. 정보가 사라지면 테러를 막을 방법도 없어지는 상황, CIA는 극단적인 선..
몇 년 전, 해외 여행 중 폭우와 산사태로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채 갇혔던 경험이 있습니다. 전기도, 인터넷도 사라진 그 어둠 속에서 느꼈던 공포는 지금도 선명합니다. 그래서인지 프랑스 재난 영화 서바이브를 보는 내내 단순한 관람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이 스크린 위로 겹쳐지는 묘한 감각을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설정은 신선했지만 속내는 아쉬웠습니다.서바이브, 바다가 사라진 지구 — 하이콘셉트 재난 설정의 매력과 한계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요트 여행을 즐기던 가족이 눈을 뜨니 광활한 바닷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다는 이 황당한 설정이, 처음 10분 동안은 꽤 강렬하게 작동합니다.영화가 제시하는 재앙의 원인은 지구자기극역전(Geomagnetic Pole Reve..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사람들과 엇비슷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건지, 그냥 반복되는 화면을 재생하고 있는 건지. 저도 한때 그 무기력함 속에서 차라리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영화 는 바로 그 감각을 정교하게 건드리는 작품입니다.아주 작고 완벽한 것들의 지도, 타임루프 속 두 청춘이 그려나간 일상의 발견이 영화의 구조는 타임루프(Time Loop)라는 장치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타임루프란 특정 시간대가 무한히 반복되는 서사 설정으로, 하루가 끝나면 다시 그 하루의 시작으로 되돌아가는 구조를 말합니다. 는 이 장치를 SF적 스펙터클로 소비하는 대신, 청춘의 권태와 상실이라는 감정의 그릇으로 사용합니다..
남편이 야근이라며 집에 늦겠다고 문자를 보내는 밤, 뭔가 이상한데 그냥 넘어가야 할지 따져야 할지 모르는 채 소파에 앉아 있던 기억이 있으시다면, 이 영화가 낯설지 않으실 겁니다. 저도 한때 믿었던 관계에서 연이어 배신을 당한 뒤 내 삶의 운전대를 누구에게라도 넘겨버리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조앤 카바스 감독의 2012년 캐나다 영화 이프 아이 워 유(If I Were You)는 그 감각을 아주 정확하게 건드렸습니다.이프 아이 워 유, 남편의 불륜을 발견한 아내와 불륜녀가 한 술집에 마주 앉기까지영화는 단골 베이커리에서 시작됩니다. 우아한 중년 여성 매들린이 남편 폴이 가장 좋아하는 케이크를 사러 갔다가 마지막 남은 것을 놓치는 장면, 사소하지만 불길한 첫 장면입니다. 곧이어 야근이라며 차갑게 전화..
어릴 적 고향 골목에 수십 년째 자리를 지켜온 작은 노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거대 프랜차이즈 자본이 그 자리를 밀어붙이기 식으로 개발하겠다며 철거를 통보했고, 동네 어르신 한 분이 홀로 그 앞을 막아섰습니다. 쇠약해 보이는 몸, 초라한 행색이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서슬이 퍼랬습니다. 그 장면이 머릿속에 박혀 있다가, 영화 을 보는 내내 자꾸 떠올랐습니다. 산소통에 의지하는 70대 노인이 전직 KGB 암살자였다는 설정 하나로 거대 자본의 횡포에 맞서는 이 영화는, 그 기억과 묘하게 포개졌습니다.더 라스트 스탠드 오브 앨런 콜, 쇠약한 외피 속의 날카로운 발톱, 그리고 KGB 반전 서사주인공 앨런 콜은 첫 등장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깊게 패인 주름과 관록이 묻어나는 얼굴, 헤비 스모커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
지독한 이별을 겪고 나서 한동안 인공지능 스피커에게 말을 걸었던 적이 있습니다. 대답이 돌아오는 것 자체가 위안이 되던 그 밤들이, 영화 를 보는 내내 자꾸 떠올랐습니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이 작품은 AI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는 남자의 이야기지만, 진짜 핵심은 따로 있습니다. 우리가 진짜 관계 대신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가, 그 질문입니다.Her, 타인의 마음을 대필하는 남자와 AI 사만다가 맺은 감정적 유대주인공 테오도르는 대필 편지 작가입니다. 매일 다른 사람의 가장 뜨거운 감정을 타이핑하지만, 정작 자신의 감정은 얼어붙어 있습니다. 전 아내 캐서린과의 이혼 서류에 서명조차 못 한 채 비디오 게임과 익명 통화로 밤을 채우던 그가, 어느 날 맞춤형 인공지능 운영체제 OS1을 구매합니다. 여기서 OS..
아무도 자신을 쫓지 않는데 혼자 도망 다니는 남자. 1997년작 의 설정입니다. 처음 이 전제를 접했을 때 저도 피식 웃었습니다. 직장에서 누명을 쓸 뻔했던 그 아찔한 기억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오해 앞에 무너졌던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이 영화가 단순한 웃음 그 이상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The Wrong Guy, 착각이 만들어낸 추격전, 슬랩스틱 코미디의 구조적 정교함이 영화의 핵심 구동 원리는 서사적 아이러니(narrative irony)입니다. 여기서 서사적 아이러니란 관객은 진실을 알고 있는데 주인공만 모른 채 행동하는 구조를 말합니다. 넬슨은 "경찰이 나를 추적하고 있다"고 굳게 믿지만, 실제로 FBI와 형사들은 키 181cm, 몸무게 83kg의 실제 킬러를 쫓고 있을 뿐 넬슨에게는 ..
